아이디어만 있는 당신에게: Pre-Seed 단계, ‘투자’가 아닌 ‘생존’에 집중하라
"Pre-Seed 단계는 창업이라는 여정의 시작점이자 가장 연약한 시기입니다. 이는 마치 갓 잉태된 생명과 같아서, 당장 필요한 것은 명문대 입학 계획서가 아니라 생존과 성장에 필수적인 최소한의 영양분입니다. 이 시기에 VC의 문을 두드리는 것은 태아의 대학 진학을 논하는 것과 같습니다. 지금 당신이 찾아야 할 것은 ‘돈’이 아니라 당신의 아이디어가 살아남을 가치가 있다는 ‘증거’입니다."
안녕하세요, 벤처피디아입니다. 스타트업의 성장 단계를 하나의 거대한 로드맵으로 본다면, 그 출발점에는 바로 **‘아이디어 단계(Pre-Seed Stage)’**가 있습니다.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머릿속을 스치고,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에 잠 못 이루는 바로 그 시기. 아직 법인 설립조차 하지 않았을 수 있고, 믿음직한 공동창업자 한두 명과 카페에 앉아 냅킨 위에 미래를 그리는, 가장 순수하고 열정적인 단계입니다.
하지만 VC로서 수많은 창업가를 만나 본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이 단계는 가장 많은 오해와 실수가 발생하는 구간이기도 합니다. 많은 창업가들이 이 원석과도 같은 아이디어를 들고 곧장 투자자의 문을 두드립니다. "이 아이디어만 있으면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돈만 투자해 주십시오!" 하지만 이내 차가운 거절의 벽에 부딪히고 좌절감에 휩싸이곤 합니다.
그것은 당신의 아이디어가 형편없어서가 아닙니다. 아직 투자자가 베팅할 ‘실체’가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 단계에서 VC가 보는 것은 그저 수많은 ‘검증되지 않은 가설’의 덩어리일 뿐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이 가장 중요하고도 위태로운 Pre-Seed 단계에서 창업가가 가져야 할 올바른 마음가짐과, ‘투자 유치’라는 허상을 좇는 대신 무엇에 집중하여 다음 단계로 나아갈 ‘생존의 다리’를 놓아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투자자가 아닌, 첫 번째 고객을 설득하라: 가설 검증의 기술
Pre-Seed 단계의 유일하고도 가장 중요한 목표는 **‘가설 검증(Hypothesis Validation)’**입니다. 당신의 멋진 사업 아이디어는 사실 수십 개의 위험천만한 가설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고객들은 A라는 문제를 겪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만들 B라는 솔루션에 기꺼이 돈을 낼 것이다’, ‘C라는 기술로 B를 구현할 수 있을 것이다’ 와 같은 것들입니다.
투자자는 이 가설들을 믿지 않습니다. 그들은 ‘증거’를 원합니다. 따라서 이 단계에서 당신이 해야 할 일은 투자자를 위한 완벽한 사업계획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 가설들을 가장 빠르고 저렴하게 검증하여 ‘사실’로 바꿔나가는 것입니다.
- 1단계: 사무실을 박차고 나가라 (Get out of the building!) 당신의 잠재 고객이 누구인지 정의하고, 최소 100명을 만나 인터뷰하십시오. 이때 주의할 점은 우리의 아이디어를 ‘판매’하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문제’에 대해 집요하게 질문하고 들어야 합니다. 그들이 정말 A라는 문제로 고통받고 있는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재 어떤 임시방편(Painkiller)을 쓰고 있으며, 얼마의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 2단계: ‘가짜 문(Fake Door)’을 만들어라 실제 제품을 만들기 전에, 제품의 핵심 가치를 설명하는 간단한 **랜딩페이지(Landing Page)**를 만드십시오. 그리고 ‘사전 예약하기’, ‘출시 알림 받기’와 같은 버튼을 만들어 잠재 고객들의 이메일 주소를 수집해 보십시오. 아무런 대가 없이 자신의 이메일 주소를 남기는 사람이 1,000명 이상 모인다면, 이는 당신의 아이디어에 시장이 반응하고 있다는 매우 강력한 초기 신호입니다.
- 3단계: 손으로 그려서라도 보여줘라 (Lo-fi Prototype) 코딩 한 줄 없이도 제품의 핵심적인 작동 방식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은 많습니다. 종이에 직접 그린 페이퍼 프로토타입이나, 파워포인트나 피그마(Figma) 같은 툴을 활용한 **클릭 가능한 목업(Clickable Mockup)**을 만들어 잠재 고객에게 직접 사용해보게 하십시오. 이를 통해 그들이 정말 우리가 의도한 대로 제품을 이해하고 가치를 느끼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VC의 관점에서 말씀드리자면, 50페이지짜리 화려한 사업계획서보다 100명의 잠재 고객 인터뷰 요약본과 1,000개의 이메일 리스트가 훨씬 더 매력적인 투자 검토 자료입니다. 그것이 바로 ‘뜬구름 잡는 아이디어’가 ‘실체 있는 사업 기회’로 진화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값싼 돈은 ‘내 돈’이다: 부트스트래핑의 힘
가설을 검증하는 과정에는 어쩔 수 없이 최소한의 비용이 듭니다. 이때 많은 창업가들이 외부에서 자금을 조달할 생각부터 하지만, Pre-Seed 단계에서 가장 건강하고 강력한 자금원은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우리는 이를 **부트스트래핑(Bootstrapping)**이라고 부릅니다.
부트스트래핑은 외부 투자 없이 창업자 개인의 자금이나 사업을 통해 발생하는 최소한의 수익으로 회사를 운영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단순히 돈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하는 고육지책이 아니라, 그 자체로 엄청난 가치를 지닌 전략적 선택입니다.
- 100%의 소유권과 통제권: 외부 투자를 받지 않았으므로 회사의 지분은 온전히 창업자의 것입니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자신의 비전대로 사업을 이끌어 나갈 수 있습니다.
- 자본 효율성의 체화: 쓸 수 있는 돈이 제한적이므로, 단돈 만 원이라도 허투루 쓰지 않게 됩니다. 최소의 자원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는 방법을 온몸으로 배우게 되며, 이는 향후 대규모 투자를 유치했을 때도 회사를 건강하게 운영하는 밑거름이 됩니다.
- 강력한 신뢰의 증표: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사업을 일군 창업가라는 사실은 그 어떤 말보다 강력한 진정성을 가집니다. VC들은 이렇게 ‘생존 본능’이 단련된 부트스트랩 창업가를 본능적으로 선호합니다.
물론 쉽지 않은 길입니다. 다니던 직장을 바로 그만두기보다는 퇴근 후와 주말을 활용하는 ‘사이드 프로젝트’로 시작하거나,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를 적극 활용하는 등 생존을 위한 치열한 지혜가 필요합니다.
나를 믿어주는 첫 번째 투자자: 3F와 정부지원금 활용법
부트스트래핑만으로는 도저히 해결되지 않는 최소한의 자금이 필요할 때, 비로소 외부 자금 조달을 고려해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때 찾아가야 할 곳은 여의도의 VC가 아닙니다.
- 3F (Family, Friends, Fools): 가족, 친구, 그리고 당신의 아이디어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믿어주는 ‘바보’ 같은 사람들. 이들은 당신의 사업계획서가 아닌, ‘당신’이라는 사람을 보고 투자하는 최초의 엔젤투자자입니다. 이들의 자금은 가장 빠르고 쉽게 얻을 수 있지만, 동시에 가장 위험한 돈이기도 합니다. 사업이 잘못되었을 때 돈뿐만 아니라 소중한 인간관계까지 잃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반드시 차용증이나 투자계약서와 같은 공식적인 문서를 작성하여 관계의 선을 명확히 해야 합니다.
- 정부지원금(Grants): Pre-Seed 단계의 창업가에게 3F보다 훨씬 더 권장되는 방법입니다. 예비창업패키지, 초기창업패키지와 같은 정부의 창업 지원 사업은 상환 의무도, 지분 요구도 없는 ‘공짜 돈’을 제공합니다. 물론 경쟁이 치열하고 복잡한 행정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이를 통과했다는 것 자체가 아이디어에 대한 1차적인 검증이 되기도 합니다. 이 자금을 활용해 MVP를 개발하고 초기 가설을 검증한다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발판을 마련하는 셈입니다.
투자를 받으러 가지 마라, ‘관계’를 만들러 가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Pre-Seed 단계에서 VC를 만나고 싶다면, 명심하십시오. 당신의 목표는 ‘투자 유치’가 아니라 **‘관계 형성(Relationship Building)’**이어야 합니다. 이 단계에서 당신에게 투자할 VC는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하지만 이 만남을 통해 훨씬 더 값진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 VC의 레이더망에 올라타기: 지금 당장 투자하지는 않더라도, VC들은 항상 유망한 초기 팀들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정중하게 자신과 자신의 비전을 소개하고, 꾸준히 진행 상황을 공유하며 그들이 당신의 성장 과정을 지켜보게 만드십시오.
- 최고급 무료 컨설팅 기회: VC는 하루에도 수많은 사업 아이템을 검토하는 전문가들입니다. 그들의 날카로운 질문을 통해 당신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시장의 리스크나 사업의 허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피드백은 수천만 원짜리 컨설팅보다 값질 수 있습니다.
- 네트워크를 요청하기: “혹시 저희가 타겟하는 OOO 산업 분야의 전문가를 아시면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와 같이, 돈이 아닌 ‘사람’이나 ‘정보’를 요청하십시오. 이는 당신이 자금 구걸이 아닌, 진정으로 사업을 발전시키고자 하는 진지한 창업가라는 인상을 줍니다.
저를 감동시키는 Pre-Seed 창업가는 돈을 달라고 찾아오는 사람이 아닙니다. 조언을 구하러 와서, 제 피드백을 경청하고, 6개월 뒤에 그 조언을 바탕으로 놀라운 성과를 만들어 다시 찾아오는 사람입니다. 그런 창업가를 발견하면, VC는 돈을 싸 들고 쫓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핵심 포인트 요약
"Pre-Seed 단계의 본질은 ‘자금 조달’이 아닌 ‘가설 검증’입니다. 부트스트래핑과 정부지원금을 활용해 최소 비용으로 아이디어를 MVP로 구현하고, 시장이 반응한다는 명확한 증거를 찾아내십시오. VC는 이 증거가 확보되기 전까지는 만나지 않거나, 만나더라도 투자가 아닌 조언과 관계 형성을 목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생존하고 증명하면, 투자는 자연히 따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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