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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피디아]/PART 1. 자금조달의 기초와 전략 수립

업종별 선호 투자기관 분석

by VenturePedia 2025. 9. 20.

당신의 업종을 이해 못 하는 VC에게 IR하는 것은 시간 낭비입니다

"우리 회사와 '결'이 맞는 투자사를 찾는 것은 단순히 자금을 확보하는 것을 넘어, 비즈니스의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 파트너를 찾는 과정입니다. 업종별 전문성을 분석하여 최적의 투자 파트너를 선택하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안녕하세요? 벤처피디아입니다.

 

제가 VC로 재직하던 시절, 아주 인상 깊었던 한 바이오 스타트업 대표님이 있었습니다. 세계적인 수준의 신약 개발 기술과 데이터를 가지고 계셨지만, 투자 유치에 번번이 고배를 마시고 있었죠. 답답한 마음에 그동안 접촉했던 VC 리스트를 살펴보니, 놀랍게도 대부분이 플랫폼이나 커머스, O2O 서비스 투자에 강점을 가진 하우스(VC 회사를 지칭하는 용어)들이었습니다. 마치 미슐랭 셰프가 최고의 레시피를 들고 동네 분식집에 찾아가 투자를 요청한 꼴이었습니다.

결국 저는 그 대표님께 바이오 분야 박사급 심사역들이 포진해 있고, 임상과 특허 전략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바이오 전문 VC 몇 군데를 소개해드렸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미팅 시작부터 대화의 깊이가 달랐고, 단 3개월 만에 성공적으로 투자를 유치하며 다음 단계로 도약할 수 있었습니다.

이 사례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자금 조달은 단순히 돈을 구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우리 회사의 비전과 산업의 특수성을 100% 이해하고, 단순한 재무적 투자자(Financial Investor, FI)를 넘어 함께 성장할 전략적 파트너(Strategic Partner)를 찾는 과정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무 VC'나 만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업종에 대한 깊은 이해와 네트워크를 가진 '최적의 VC'를 선별하여 접근하는 전략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왜 ‘아무 VC’나 만나면 안 되는가?

많은 창업가들이 저지르는 가장 큰 실수 중 하나는 최대한 많은 VC에게 IR 자료를 보내면 그중 한 군데는 관심을 보일 것이라는 '광범위 폭격(Shotgun Approach)' 전략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는 비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때로는 우리 회사의 평판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우리 업종과 전혀 상관없는 VC에게 문을 두드리는 것은, 우리 스스로가 시장과 투자사에 대한 기본적인 조사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을 방증하는 셈입니다.

우리 업종에 전문성을 가진 '섹터 전문가(Sector Specialist)' VC를 만나야 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1. 의사결정의 속도와 깊이가 다르다: 해당 분야의 전문 심사역은 우리 비즈니스 모델과 기술의 핵심 가치를 즉시 파악합니다. 산업의 기본적인 용어나 시장의 경쟁 구도를 처음부터 설명할 필요가 없죠. 이는 곧 매끄러운 커뮤니케이션과 신속한 투자 검토, 그리고 최종 의사결정까지의 시간 단축으로 이어집니다. 반면, 비전문가 심사역을 만나면 IR 시간의 절반 이상을 스터디시키는 데 허비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2. 단순한 돈을 넘어선 '가치 부가(Value-Add)'를 제공한다: 섹터 전문가 VC는 돈과 함께 그들이 수년간 쌓아온 산업 네트워크와 인사이트를 함께 제공합니다. 예를 들어, SaaS 전문 VC는 우리에게 최적의 가격 정책(Pricing) 모델을 조언해 주거나, 핵심 기술 인력을 소개해 줄 수 있습니다. 바이오 전문 VC는 유능한 임상시험수탁기관(CRO)을 연결해 주거나, 글로벌 제약사와의 라이선스 아웃 딜을 위한 조언을 해줄 수 있습니다. 이러한 'Value-Add'는 초기 스타트업에게는 조달한 자금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귀중한 자산입니다.
  3. 높은 확신(Conviction)을 가지고 끝까지 함께 간다: 모든 스타트업은 예상치 못한 위기를 겪는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을 지나게 됩니다. 이때, 우리 산업의 생리를 이해하는 투자자는 섣불리 패닉에 빠지지 않습니다. 일시적인 매출 하락이나 기술적 난관이 해당 산업에서는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일임을 이해하고, 오히려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후속 투자(Follow-on Investment)를 단행하거나 적극적으로 해결책을 모색해 줍니다. 반면, 어설프게 투자한 비전문 투자사는 작은 위기에도 쉽게 신뢰를 거두고 가장 먼저 발을 빼려고 할 것입니다.

결국, 우리 회사와 '결'이 맞는 투자사를 찾는 것은 항해를 함께 할 최고의 항해사를 찾는 것과 같습니다. 망망대해에서 방향을 잃었을 때, 그저 노 젓는 법만 아는 선원이 아니라 별자리를 읽고 해류를 이해하는 전문가가 옆에 있어야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VC 투자 지도: 업종별 대표 선수들은 누구인가?

그렇다면 우리 업종을 가장 잘 이해하는 VC는 어떻게 찾아야 할까요? 국내 VC들은 크게 모든 분야에 투자하는 '제너럴리스트(Generalist)'와 특정 분야에 집중하는 '스페셜리스트(Specialist)'로 나뉩니다. 대형 VC들은 대부분 제너럴리스트에 속하지만, 그 안에서도 섹터별로 전문 심사역 팀을 꾸려 운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제 주요 업종별로 어떤 특징을 가진 VC들을 공략해야 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딥테크 / AI / SaaS (ICT 서비스)

  • 특징: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VC 투자의 최대 격전지입니다. 이 분야의 심사역들은 기술 자체에 대한 깊은 이해도를 갖춘 경우가 많습니다. 컴퓨터공학, 전자공학 등 공학 계열 석·박사 출신이거나, 대형 IT 기업에서 개발자나 프로덕트 매니저(PM)로 근무한 경험을 가진 이들이 주를 이룹니다. 이들은 기술의 확장성, 비즈니스 모델의 확장성(Scalability), 그리고 SaaS 기업의 핵심 지표인 MRR(월간 반복 매출), ARR(연간 반복 매출), 고객 이탈률(Churn Rate), 고객 생애 가치(LTV) 등을 매우 중요하게 봅니다.
  • 공략법: 기술의 차별성과 독창성을 명확하게 어필해야 합니다. 단순히 'AI를 활용한 서비스'라는 말보다는, '우리의 AI 모델은 기존 모델 대비 연산 비용을 30% 절감했으며, 특정 산업 데이터 학습을 통해 정확도를 15% 이상 높였다'와 같이 구체적인 수치로 증명해야 합니다. 또한, 이들은 투자 이후에도 기술 로드맵이나 핵심 인력 채용에 대한 깊이 있는 조언을 해줄 수 있는 파트너들입니다. 한국투자파트너스, KB인베스트먼트, 스마일게이트인베스트먼트,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와 같은 대형 VC 내의 ICT 투자 본부는 물론, 네이버 D2SF, 카카오벤처스와 같이 IT 대기업을 뒷배로 둔 CVC(기업주도형 벤처캐피탈), 그리고 라이트하우스컴바인인베스트, ZS벤처스처럼 특정 기술 분야에 집중하는 하우스들도 적극적으로 찾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2. 바이오 / 헬스케어

  • 특징: 가장 전문성이 요구되는 분야로, 투자 난이도가 매우 높습니다. 이 분야의 전문 심사역들은 대부분 의사, 약사, 수의사 출신이거나 생명과학 분야 박사(Ph.D.) 학위를 소지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논문과 특허를 분석하고, 임상 데이터의 유효성을 해석하는 데 능숙합니다. 투자 검토 시에는 기술의 혁신성(First-in-class)은 물론, 규제 기관(식약처, FDA 등)의 인허가 가능성, 시장 진입 후 약가 정책, 경쟁 약물 대비 우위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합니다. 투자 회수(Exit)까지 10년 이상이 걸리는 긴 호흡의 투자가 많다는 특징도 있습니다.
  • 공략법: 우리 기술의 과학적 근거(Scientific Evidence)를 명확한 데이터로 제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심사역과의 미팅은 단순한 사업 설명회가 아니라, 깊이 있는 기술 세미나 혹은 학회에 가깝다고 생각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LSK인베스트먼트, 인터베스트, 데일리파트너스, 솔리더스인베스트먼트 등은 전통적인 바이오 투자 강자로 꼽힙니다. 또한, 대웅제약이나 동구바이오제약의 사례처럼 제약사들이 직접 설립한 CVC들은 단순 투자를 넘어 공동 연구개발이나 기술이전까지 염두에 둔 전략적 파트너가 될 수 있으므로 우선적으로 접촉해볼 만합니다.

3. 콘텐츠 / 커머스 / 플랫폼

  • 특징: 소위 '대박' 유니콘들이 많이 탄생하는 분야로, B2C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높은 이해도가 필요합니다. 이 분야의 심사역들은 트렌드에 민감하고, 소비자의 심리를 꿰뚫어 보는 능력이 탁월합니다. 그들은 '이 서비스가 왜 재미있는가?', '사용자들이 왜 계속해서 찾아오는가?'와 같은 본질적인 질문에 집중합니다. 따라서 MAU(월간 활성 사용자 수), 리텐션(재방문율), 바이럴 계수(Viral Coefficient), 네트워크 효과(Network Effect)와 같은 사용자 지표를 매우 중요하게 평가합니다.
  • 공략법: 탄탄한 팬덤과 강력한 커뮤니티를 구축했다는 점을 어필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얼마나 많은 충성 고객을 확보했는가'가 곧 이 비즈니스의 해자(Moat)가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명확한 수익 모델(BM)과 브랜딩 전략을 제시해야 합니다. 이 분야는 IMM인베스트먼트, 프리미어파트너스, 스톤브릿지벤처스 등 대형 VC들이 꾸준히 좋은 성과를 내고 있으며, 캡스톤파트너스, 본엔젤스벤처파트너스처럼 초기 콘텐츠/플랫폼 스타트업 발굴에 탁월한 역량을 보이는 하우스들도 존재합니다. 특히, K-콘텐츠의 부상으로 영상, 웹툰, 게임 등 특정 콘텐츠 장르에만 투자하는 전문 펀드들도 늘어나는 추세이므로 이를 잘 활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업종 구분 심사역 특징 핵심 검토 지표 대표적인 Value-Add
딥테크/AI/SaaS 공학/CS 전공, IT 기업 출신 기술 확장성, SaaS Metrics (MRR, Churn 등) 기술 로드맵 자문, 핵심 개발자 채용 지원
바이오/헬스케어 의/약사, 생명과학 박사(Ph.D.) 과학적 데이터, 특허, 임상/인허가 전략 CRO/병원 네트워크 연결, 글로벌 제약사 M&A 자문
콘텐츠/커머스 트렌드 민감, B2C 전문가 사용자 지표 (MAU, 리텐션), 네트워크 효과 브랜딩/마케팅 전략 지원, 대기업과의 제휴 연결

우리 회사와 '결'이 맞는 투자사 찾는 실전 팁

그렇다면, 이 넓은 VC 시장에서 우리 회사와 궁합이 잘 맞는 투자사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찾아낼 수 있을까요? 발품을 파는 만큼 좋은 파트너를 만날 확률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갑니다.

  1. 포트폴리오를 역추적하라: 가장 확실하고 기본적인 방법입니다. 관심 있는 VC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그들이 어떤 회사에 투자했는지(포트폴리오)를 살펴보세요. 우리와 비슷한 업종의 회사, 혹은 우리가 벤치마킹하는 회사가 있다면 그 VC는 우리 비즈니스를 이해할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더브이씨(The VC)'나 '혁신의숲'과 같은 스타트업 정보 플랫폼을 활용하면 특정 VC의 포트폴리오나 특정 스타트업의 투자 유치 이력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단, 직접적인 경쟁사에 투자한 VC는 이해 상충(Conflict of Interest)의 문제가 있을 수 있으므로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2. 사람(심사역)을 분석하라: 투자는 결국 '사람'이 '사람'에게 하는 것입니다. VC라는 회사 전체를 보기보다는, 그 안에 있는 개별 심사역, 특히 파트너급의 전문 분야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LinkedIn 프로필이나 과거 언론 인터뷰, 강연 영상 등을 통해 해당 심사역이 어떤 분야에 전문성과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하세요. 마음에 드는 심사역을 찾았다면, 그 사람이 과거에 어떤 회사들을 발굴하고 투자했는지 이력을 살펴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3. 차가운 연락(Cold Mail)보다는 따뜻한 소개(Warm Introduction)를 활용하라: 무작정 VC 대표 메일로 IR 자료를 보내는 것보다,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통해 소개받는 것이 성공률을 몇 배나 높여줍니다. 가장 좋은 연결고리는 해당 VC가 투자한 다른 스타트업의 대표입니다. 그들에게 우리 회사를 추천해달라고 부탁해보세요. 심사역들은 자신이 투자한 대표가 추천하는 회사에 대해서는 훨씬 더 신뢰를 갖고 검토하게 됩니다. 그 외에도 업계의 신뢰받는 변호사, 회계사, 혹은 액셀러레이터의 추천도 매우 유효합니다.

투자를 받는다는 것은 단순히 재무제표에 현금이 늘어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우리 회사의 주주 명부에 새로운 파트너의 이름을 올리는 '결혼'과도 같습니다. 잘못된 결혼이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기듯, 우리 업을 이해하지 못하는 투자자와의 만남은 성장의 동력이 아니라 족쇄가 될 수 있습니다. 부디 시간을 들여 신중하게 우리 회사의 비전과 성장을 함께할 최고의 파트너를 찾으시길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핵심 포인트 요약

"모든 VC에게 문을 두드리지 마십시오. 우리 업종에 대한 깊은 이해와 네트워크를 가진 '전문 VC'를 선별하여 공략해야 합니다. 포트폴리오와 심사역 개개인의 전문성을 분석하여 우리와 '결'이 맞는 최적의 파트너를 찾으십시오."